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부부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대리출산을 결심한 여성. 8,000만 원에 체결된 계약, 그리고 출산 후 20년 가까이 이어진 갈등. 법원 앞에 선 이 가족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법 앞에서 진짜 어머니는 누구인가?"
2025년 4월 24일, 대법원은 이 물음에 답을 내놓았습니다.
사건의 경위 — 8,000만 원짜리 계약에서 시작된 20년 갈등
2005년, ○○○ 부부는 인터넷 대리모 카페를 통해 원고를 알게 되었습니다. 원고는 자신의 난자와 자궁을 제공하여 아이를 출산해 주는 대가로 8,000만 원을 받기로 약정하고 시험관 시술로 임신하여 2006년 피고를 출산했습니다. ○○○ 부부는 아이를 인도받아 출생신고를 마치고 친생자처럼 양육해 왔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에 터졌습니다. 원고는 아이가 100일도 되지 않았을 무렵부터 ○○○ 부부에게 출생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하며 금전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30회 이상에 걸쳐 합계 약 5억 원을 수령하였습니다. 원고는 결국 2020년 공갈 및 명예훼손죄로 징역 4년이 확정되었습니다.
형사처벌을 받으면서도 원고는 소송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과 SNS에 ○○○ 부부 및 가족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고 피고의 출생 비밀을 폭로하자, 당시 11세에 불과했던 피고는 극심한 충격을 받아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출국하게 되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① — 대리모 계약은 무효, 낳은 사람이 친모
대법원은 보조생식 시술로 임신·출산한 자녀를 타인에게 인도하는 내용의 대리모계약이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고, 출생한 자녀를 거래의 객체화하며, 임신·출산 과정에서 형성된 모자간 정서적 유대관계를 깨뜨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하므로 민법 제103조에서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판시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원고가 친모로서의 권리를 포기하기로 한 각서 역시 대리모계약의 일부이므로 함께 무효이고, 진실한 친자관계를 부정하고 모로서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박탈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어도, 낳은 사람이 법적으로 어머니라는 원칙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② — 그러나 "자녀 복리"가 최우선이다
여기서 이 판결의 진짜 핵심이 등장합니다. 대법원은 원고를 친모로 인정하면서도, 소송 자체가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개로 판단했습니다.
Q. 대리모가 법적으로 친모인데, 친생자관계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하면 무조건 인정되나요?
A.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법원은 자녀의 복리가 친자관계 성립과 유지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므로, 친생자관계존재확인의 소를 통해 진실한 신분관계를 귀속시키는 것이 오히려 자녀의 복리에 현저히 반하게 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예외적으로 소권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때 '자녀 복리에 현저히 반하는지'는 법률상 부모와 자녀의 정서적 유대 기간과 내용, 판결 확정 시 자녀가 입을 고통, 소송에 이른 동기와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원심(서울가정법원)은 이 부분에 대한 심리 없이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를 문제 삼아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이 판결이 남긴 것
이 판결은 세 가지 법리를 명확히 선언했습니다.
첫째, 대리모계약은 아무리 당사자 간에 서면으로 약정하였더라도 민법 제103조 위반으로 무효이며, 친권 포기 각서도 같습니다.
둘째, 모자관계는 임신·출산이라는 사실 자체로 성립하는 자연적 친자관계입니다. 계약서의 내용이 이를 바꿀 수 없습니다.
셋째, 진실한 신분관계의 확정이라는 목적이 있더라도, 그 소송이 아이의 복리를 현저히 해친다면 소권남용으로 허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법원은 법률 논리에 앞서 아이의 실질적 이익을 먼저 봅니다.
마무리
대리출산, 정자·난자 기증, 보조생식 기술이 점점 일상화되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법원은 "아이를 낳는 행위"를 계약의 이행으로 취급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분쟁에서 아이가 어디서 더 안전하고 행복한지를 먼저 묻습니다.
가족 관계와 신분에 관한 분쟁은 일반 재산 분쟁과 달리, 잘못된 판단 하나가 한 사람의 평생을 바꿉니다. 지금 상황이 복잡하게 느껴지신다면, 그 복잡함이 바로 전문가의 검토가 필요한 신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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