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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칼럼

"엄마가 양육비 포기 각서 썼어도, 저는 아빠에게 받을 수 있나요?" — 혼외자의 과거 부양료 청구 대법원 2025. 9. 11. 선고 2023므11758 판결

by 박휘영 대표변호사 2026. 5. 14.

 

엄마가 양육비 포기 각서 썼어도, 저는 아빠에게 받을 수 있나요?" — 혼외자의 과거 부양료 청구 대법원 2025. 9. 11. 선고 2023므11758 판결

"저는 혼외자로 태어났습니다. 엄마가 저를 혼자 키웠고, 아빠는 제 존재를 외면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 미성년 시절 아빠에게 받지 못한 양육비를 받을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가진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리고 2025년 9월, 대법원은 이 물음에 매우 중요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엄마가 "양육비를 청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 해도, 자녀 본인의 권리는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배경 — 합의서 한 장으로 끝내려 한 친부

 

원고는 2001년 1월 혼외자로 태어났습니다. 친부는 당시 다른 사람과 혼인 중이었고, 출산 직후인 2001년 5월 원고의 생모와 합의서를 작성했습니다. 합의서의 내용은 "친부가 2004년 5월까지 양육비 3,000만 원을 지급하고, 그 이후의 양육비 지급 의무는 자동 소멸한다. 친부는 원고를 보지 않는 조건으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생모는 원고가 성년이 될 때까지 홀로 양육했습니다. 성년이 된 원고는 스스로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친자관계를 확정하고, 동시에 미성년 기간 동안의 과거 부양료 지급을 청구했습니다. 친부 측은 "생모가 이미 포기 합의를 했다"며 거부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 부모의 합의가 자녀 권리를 막을 수 없다

 

대법원은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구체적인 청구권의 내용과 범위가 확정되기 전이거나, 확정된 이후라도 그 이행기가 도래하기 전이라면, 장래 양육비채권을 포기하기로 하는 약정을 하였더라도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녀의 복리에 반하여 그 포기의 효력이 자녀에게 미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서 인지의 소급효(민법 제860조)를 적용했습니다.

Q. 인지(認知)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발생한 양육비도 청구할 수 있나요?

 

A. 그렇습니다. 민법 제860조에 따라 인지는 출생 시로 소급하여 효력이 발생하므로, 인지판결 확정 전에 발생한 과거 양육비에 대해서도 상대방이 부담함이 상당한 범위 내에서 청구할 수 있습니다. 혼외자가 부양의무자를 상대로 인지판결 확정 전 미성년인 기간 동안 발생한 과거 부양료를 청구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며, 비록 부모 일방으로부터 현실적으로 부양을 받았더라도 달리 볼 것이 아닙니다.

 


핵심 법리 — 양육비는 '부모의 권리'가 아닌 '자녀의 권리'

 

이 판결이 가지는 법리적 의미는 분명합니다.

 

미성년 자녀에 대한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는 당사자의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으로 구체적인 내용과 범위가 정해지기 전에는 추상적인 청구권에 불과하고, 이행기가 도래하기 전의 양육비채권은 친족법상 신분으로부터 독립하여 처분이 가능한 완전한 재산권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쉽게 말하면,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양육비를 부모가 미리 포기하는 약정은 자녀 고유의 권리에는 효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합의서는 부모 사이에서만 유효할 뿐, 자녀의 손에서 받을 권리를 빼앗지는 못합니다.

 

결론적으로 혼외자는 부모의 소득과 재산 정도, 경제생활의 수준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부모 일방의 부양만으로도 부모 쌍방의 생활수준에 상응하는 정도로 충분한 부양을 받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양육하지 않은 부모 일방을 상대로 미성년인 기간 동안의 과거 부양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친부가 원고에게 과거 부양료 7,0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고,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습니다.


실무적으로 꼭 알아두어야 할 것

 

이 판결은 혼외자 문제뿐 아니라, 협의이혼 과정에서 양육비 포기 합의를 한 경우에도 시사점이 큽니다.

 

첫째, 이혼·별거 시 작성한 양육비 포기 합의서는 부모 간의 채권·채무를 정리한 것일 뿐, 자녀 본인의 부양료 청구권을 소멸시키지 않습니다.

 

둘째, 혼외자라면 성년이 된 후라도 인지청구와 함께 미성년 시절의 과거 부양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인지판결이 확정되면 출생 시로 소급하여 법적 부자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상대방이 "이미 생모가 포기 각서를 썼다"거나 "지금까지 잘 키웠으니 문제없다"고 주장해도, 특별한 사정의 입증 없이는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마무리

 

부양의무는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아니라, 친자관계라는 사실 자체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본질적 의무입니다. 각서 한 장, 합의 한 번이 그 의무를 영구히 없애줄 수 없다는 것을 이번 판결은 다시 한번 분명히 했습니다.

 

혼외 출생, 인지 문제, 과거 양육비 등 가족 관계에 얽힌 법적 분쟁은 단순해 보여도 법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나는 이미 포기했으니 늦었다"고 느껴지신다면, 그 판단 전에 한 번만 더 전문가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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