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 가끔 이런 장면을 봅니다. 주범은 이미 구속되어 수감 중입니다. 재산은 없습니다. 그런데 배우자 명의로 된 부동산과 계좌에는 돈이 있습니다.
피해 기업은 묻습니다. "저 재산도 우리 돈 아닌가요?"
2023년 서울고등법원의 답은 이렇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받을 수 있습니다.
9년간 1,648건, 14억을 빼앗긴 회사
甲은 원고 회사 직원이었습니다. 9년간 소프트웨어 1,648건을 불법복제하고 사용하여 회사에 약 14억 6,000만 원의 손해를 입혔습니다. 형사재판에서 징역 4년 6월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甲은 형사처벌을 받기 전, 자신이 취득한 범죄이익을 처(배우자)와 아들 명의 계좌로 분산시켰습니다. 피고(배우자)는 그 돈을 다시 제3자 계좌로 이전·처분했습니다.
피고와 아들도 범죄수익은닉죄로 형사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원고 회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배우자를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 은닉 행위 자체가 불법행위다
서울고등법원은 피고에게 8억 1,657만 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핵심 논리는 이렇습니다. 피고는 甲이 원고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를 부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범죄수익을 수령하고 이를 이전·처분함으로써 원고가 피해를 회복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이것이 공동불법행위입니다.
사해행위취소 —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치려는 의도로 재산을 처분할 때 그 행위를 취소하는 제도 — 와는 별개로, 범죄수익 은닉 행위 자체가 독립적인 불법행위가 됩니다. 사해행위취소의 요건(제척기간, 사해의사 등)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이 경로가 열려 있습니다.
피해 회복을 포기하기 전에
강남에서 17년을 하다 보니 이런 패턴의 사건을 여러 차례 봤습니다. 주범 형사 처벌로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자금이 가족 명의로 빠져나가 있는 경우입니다.
이 판결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형사 유죄를 받은 범죄수익 수령자는 민사에서도 책임을 집니다. 주범만 상대하고 끝내는 것은 피해 회복의 절반만 하는 것입니다.
직원의 불법행위, 횡령, 배임으로 기업이 피해를 입었다면 — 자금 흐름 추적, 가압류, 수령자에 대한 민사 소송을 형사와 동시에 진행해야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재산은 사라집니다.
법무법인 휘명 대표변호사 박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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