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관리비 고지서를 보낼 때마다, 반송되는 봉투가 있습니다.
입주자가 없는 호실, 또는 분양은 됐지만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공간. 저는 변호사이기 이전에, 지식산업센터 관리인으로 8년째 그러한 현장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소송 기록에서 보는 숫자가 아니라, 복도 끝까지 불이 꺼져 있는 실제 풍경으로.
55%, 두 칸 중 하나는 비어 있다
최근 한국부동산개발산업연구원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수도권 지식산업센터 공실률 약 55%. 처음 이 숫자를 본 순간, 저는 통계보다 장면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층마다 불이 반만 켜져 있는 건물. 관리사무소에 민원 전화가 줄어드는 게 나쁜 신호인 곳. 입주율이 낮아지면 공용관리비 부담은 남은 입주자들에게 집중되고, 그게 또 이탈을 불러오는 악순환. 이건 숫자 이전에, 살아있는 문제입니다.
2016년 113동이던 전국 지식산업센터 사용승인 건수가 2025년에는 620동. 10년 만에 5배를 넘었습니다. 규제 완화와 대출·세제 혜택이 맞물린 2020~2022년, 시장은 수요를 확인하기 전에 먼저 지어버렸습니다.

정부가 꺼낸 카드 — "집으로 바꾸겠다"
정부가 공실 지식산업센터를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습니다. 도심 주택 공급도 늘리고 공실도 해소한다는 두 마리 토끼입니다.
저는 이 발표를 보면서 솔직히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방향은 맞다. 그런데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지식산업센터는 처음부터 집이 되려고 지어진 건물이 아닙니다. 층고 4.5~6m, 공장과 업무시설 기준으로 설계된 구조. 채광도, 환기도, 배관도, 피난 기준도 — 주거용 기준과 다릅니다. 리모델링으로 해결되는 수준이 아니라, 신축에 준하는 비용이 드는 곳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소유자가 한 명이 아닙니다.
지식산업센터는 호실별로 구분등기가 됩니다. 한 건물 안에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의 소유자가 존재합니다. 전체를 주거용으로 전환하려면 그 모든 소유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관리인으로 8년을 일하면서 확인한 사실이 있습니다 — 구분소유자 전원의 동의를 받는 일은, 이론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그럼 수분양자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
정책 논의가 어떻게 흘러가든, 이미 수억 원을 납입하고 공실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수분양자들에게는 지금 당장의 문제가 있습니다.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지. 납입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
17년 동안 수백 건의 분양 관련 사건을 다루면서, 저는 한 가지를 반복해서 확인했습니다. 피해를 본 것과, 법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공실이 심각해도, 그것만으로 계약이 자동으로 해제되지는 않습니다. 분양 당시의 광고 내용, 계약서 문구, 시행사의 귀책 여부, 신탁 구조 — 이것들을 함께 뜯어봐야 비로소 방향이 나옵니다.
반대로, 충분한 사유가 있음에도 '어차피 안 되겠지'라는 생각에 포기한 분들도 많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안타깝습니다. 해볼 수 있었던 싸움을 시도조차 못 하고 지나간 것이니까요.
테헤란로 창밖을 보며
이노센스빌딩 8층 창밖으로 강남의 빌딩 숲이 보입니다. 저기 저 건물들 중 얼마나 많은 호실이 지금 이 순간 비어 있을까, 생각하는 날이 있습니다.
공실은 숫자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노후 자금이, 사업 밑천이, 믿었던 투자가 그 빈 공간 안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정부 정책이 어떻게 바뀌든, 본인의 계약 상황은 스스로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 그걸 점검할 적기입니다.
법무법인 휘명 대표변호사 박휘영
📞 02-558-1600 📧 parkbyon77@naver.com 📍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63길 11 이노센스빌딩 2·7·8층 (선릉역 10번 출구)
변호사 경력 17년 · 지식산업센터 분양 소송 100건 이상 · 지식산업센터 관리인 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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