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기억 하나가 있습니다.
사건 기록을 보면 누가 봐도 이상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증거는 명백했고, 법리도 선명했습니다. 그런데 판결은 달랐습니다. 의뢰인은 울었고, 저는 항소장을 쓰면서도 가슴 한켠이 무거웠습니다. '혹시 이 재판이…' —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생각을 붙들 법적 수단이 없었습니다.
변호사 17년차인 지금도, 그 기억은 가끔 떠오릅니다.
그래서인지, 2026년 3월 12일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날 형법 제123조의2 — '법왜곡죄' 가 공포와 동시에 즉시 시행되었습니다.

판사가, 검사가, 수사경찰이, 고의로 법을 왜곡하면 10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로 처벌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 법이 처벌하는 것은 '실수'가 아닙니다
법왜곡죄는 단순한 판단 착오나 법 해석의 차이를 처벌하는 법이 아닙니다. 핵심은 '목적' 입니다.
특정인을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만들 목적을 가지고, 증거를 인멸하거나, 법령을 의도적으로 잘못 적용하거나, 범죄를 알면서도 수사하지 않거나,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을 왜곡하는 행위 — 그것이 처벌의 핵심입니다.
말하자면, '실수처럼 포장한 고의' 를 겨냥한 법입니다.
법이 시행된 그날, 곧바로 고발장이 접수됐습니다
시행 첫날, 조희대 대법원장과 박영재 대법관에 대한 고발장이 경찰에 접수되었습니다. 법이 시행된 지 몇 시간도 안 된 일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이 법은 오래 기다렸던 '무기'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갑작스러운 '위협'이었던 셈입니다.
수사기관 일선에서는 업무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고발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겼다는 것이죠. 어쩌면 그 불안감 자체가, 이 법의 작은 효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처벌이 가능할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이 법은 '목적범'입니다. 판사나 검사의 내심의 의도 — 특정인을 해치려 했다는 그 목적 — 을 입증해야 합니다. 법복 안에 숨겨진 의도를 증명하는 일은, 이 세상 어느 나라 법정에서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증거해석을 왜곡한다'는 게 대체 뭔가"라는 명확성 논란도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위헌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고,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 법의 실질적 위력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 법은 의미가 없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법이 바뀌면, 분위기도 바뀝니다
17년간 법정을 누비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법은 처벌 수단이기 이전에, 행위의 기준선입니다.
법왜곡죄가 생겼다는 것 자체가, 사회가 형사사법 종사자들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당신들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메시지요.
실제 처벌 사례가 나오든 나오지 않든, 이 메시지가 법정과 수사실 안에 스며드는 것 — 그것만으로도 이 법은 이미 역할을 시작한 것일지 모릅니다.
테헤란로 사무실 창밖으로 봄이 들어오는 요즘, 저는 오래전 그 의뢰인을 가끔 떠올립니다. 그분의 억울함이 법으로 해소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라는 생각과 함께.
형사사건, 수사·재판 과정에서 부당함을 느끼고 있다면, 먼저 말씀해 주세요. 17년의 경험으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법무법인 휘명 대표변호사 박휘영 📞 02-558-1600 📧 parkbyon77@naver.com 📍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63길 11 이노센스빌딩 2·7·8층
'변호사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AI 데이터센터 특별법 국회 통과 — 기업과 투자자가 꼭 알아야 할 핵심 내용 정리 (0) | 2026.05.12 |
|---|---|
| 재판소원 제도 도입 후 내 사건에 헌법소원 가능할까? — 변호사가 핵심만 정리했습니다 (0) | 2026.04.27 |
| "이 판사, 공정한 건가요?" — 17년 차 변호사가 겪은 기피신청의 현실 (0) | 2026.04.22 |
| 서울시 적극행정이란? 공무원 소극행정 피해 시민이 알아야 할 법적 권리와 구제 방법 (0) | 2026.04.22 |
| 전 세계 AI 칩의 4분의 1이 구글 손에 — 이 숫자가 말하는 것 (0) | 2026.04.09 |